원숭환과 숭정제 그리고 이순신 장군님과 선조 :: 신화만들기

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원숭환과 숭정제 그리고 이순신 장군님과 선조
    역사에 관하여 /인물 2022. 9. 16. 08:24
    반응형

    이순신 장군님의 영웅적인 업적과 그리고 당대 임금이었던 선조와의 갈등!!

     

    이런 부분들은 우리에게 이미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갈등은 전쟁내내 도망칠 궁리에 몰두했던 선조(개인적으론 선조가 일본에게 잡히지 않고 잘 도망 다닌 덕분에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이순신 장군의 활약이 있었다고 나름 선조를 위해서 변명을 해봅니다) 그리하여 백성들로부터의 신망이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연전연승으로 백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왕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셨던 이순신 장군님.

    전쟁으로 인한 사직의 보존이 위험한 가운데 지극히 평범한 왕으로써 더군다나 출신성분의 약점을 가지고 있었던 선조에게는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질투와 자신의 자리에 대한 위협은 어쩌면 당연한 듯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식적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관계가 명나라 말기에도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영원성 전투의 영웅이자 명나라 최후의 명장인 원숭환과 이자성의 난으로 인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입니다.

    원숭환과 이순신 장군님은 닮은듯하면서도 다른 면이 있는 조선과 명나라를 대표하는 명장입니다.

    영원성 전투의 영웅이자 명나라 마지막 명장인 원숭환

    명나라는 조선과 연합하여 후금을 맞이하여 싸운 사르 후 전투에서 대패를 당한이후 단 한번도 후금을 전투에서 이겨본 적이 없었고, 사르후 전투 후 명나라 군대가 후금을 이긴 최초의 전투가 바로 영원성 전투입니다. 그만큼 명나라 입장에선 엄청난 승리였고 거기에 명나라 군대에게 늘 악몽을 선사한 누르하치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힌 전투입니다.

    참고로 누르하치가 이 영원성 전투에서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사망했는지에 대한 점은 의견이 갈리나 분명한 건 누르하치는 영원성 전투 이후 8개월 만에 사망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 누르하치와 후금으로 하여금 이제까지 완전히 호구로 봤던 명나라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꿔놓게 됩니다. 또한 원숭환은 누르하치 다음 황제에 오른 홍타이지에게도 영원 금주 전투에서 대승을 거둬 , 홍타이지로 하여금 원숭환이 살아있는 한 요서 방어선 돌파는 불가능함을 일깨워 줍니다.

    영원성 전경

     

    그리고 이때부터 후금은 원숭환 제거를 위한 반간계를 쓰기 시작합니다. 마치 일본군대가 이순신 장군님이 살아있는한 남해바다를 지나갈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반간계를 쓴 것처럼.

    다만 두 나라의 반간계로 인한 큰 차이점이 있다면 명나라는 반간계에 넘어가 원숭환을 처형한 반면, 조선은 약포 정탁 선생의 구명 상소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순신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에 비록 백의종군 형식이었지만 처형하지 않고 살려뒀다는 점입니다.

    정탁 선생의 이순신 장군 구명상소

     

    만일 명나라와 마찬가지로 선조가 이순신을 처형했다면, 칠천량 대패 이후 명량대첩이나 노량대첩은 존재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숭정제와 마찬가지로 선조가 조선의 마지막 임금이었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여기서 이순신 장군님과 원숭환과의 개인적인 차이점이 나는데, 일단 이순신 장군님은 모든 행동에 신중하셨고, 결코 독단적인 행동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원숭환은 뛰어난 능력도 있긴 했지만 성격이 상당히 독단적이고 신중치 못했다고 평가받습니다.

    원숭환이 엄당의 모함에 숭정제의 의심과 미움을 받은 결정적 사건이 두 가지 있었으니, 하나는 평안도 가도를 점령해서 조선민에게 극도의 민폐를 끼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모문룡이란 장수를 처형한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누르하치가 병사했을 때 조정에게 알리지 않고 후금으로 조문을 다녀왔던 점입니다. 원숭환의 죄목에 이때부터 후금과 내통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청나라 1대 황제 누루하치(좌)와 2대 황제 홍타이지. 이들은 모두 영원성 전투에서 원숭환에게 패합니다

     

    모문룡의 처형은 상당한 월권행위였고, 특히 모문룡으로부터 상당한 뇌물을 상납받았던 엄당 측으로썬 자신들에게 들어올 경제적 이득이 하루아침에 날아가버려서 그 원한 또한 대단했다고 합니다. 결국 원숭환의 죽음은 자신이 많은 부분에서 빌미를 제공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후금이 자신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음을 알고 있고, 거기에 원숭환마저 없애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면서도 기어코 원숭환을 제거하고야 마는 명나라 황실과 환관 위충현이 만든 엄당 세력의 작태를 볼 때, 명나라는 망할 운명이었단 점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원숭환은 체포된 지 9 개월 후인 음력 8월 서시의 거리에서 살점이 썰려나가는 능지처참을 당하면서 생을 마감합니다. 한마디로 원숭환은 적국에게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 자신이 모시던 황제로부터 누명을 받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10여 년 후 원숭환을 처형했던 숭정제도 청나라 군대가 아닌 자신의 백성인 이자성이 일으킨 난으로 인해 자살로 세상과의 인연을 끊습니다. 남송의 악비와 더불어 중국 역사상 가장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고 평가받는 원숭환.

    원숭환의 석상

     

    선조에게 굳이 그나마 두 가지 잘한 점을 꼽자면 일본군에게 붙잡히지 않아서 조선의 종묘사직을 애써 보존했고, 이순신 장군님을 처형하지 않고 살려뒀다는 점.

    원숭환의 사례에서 봤듯이 선조가 이순신 장군님을 처형했다면 선조 자신이 바로 조선의 마지막 임금이 되었을 거란 점은 분명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적은 늘 내부에 있습니다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