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 결승전 대역전극 :: 신화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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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 결승전 대역전극
    스포츠 2021. 2. 1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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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오픈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요즘 호주에서는 코로나 19가 다소 진정됐다고 판단됐는지 호주오픈 관중석에 조금이긴하지만 유료관중들이 보이더군요.

    코로나 19로 지난 1년간 다소 어색한 롤랑가로,US오픈이 치뤄지고 윔블던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첨으로 대회가 열리지 못했더군요. 빨리 종식되길 진심으로 그리고 간절히 기원합니다.

    오늘은 오픈시대이후 벌어진 4대 메이저대회 가운데 대역전승이 벌어진 결승전경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한마디로 결승전 스코어 0:2에서 3:2로 뒤집은 경기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호주오픈과 윔블던 결승전에서 이런 경기는 없었습니다. 다만 할뻔한 경기는 있었습니다. 호주오픈의 경우 87년 결승전에서 호주의 팻 캐시가 스웨덴의 스테판 에드베리에게 1,2세트를 3/6, 4/6으로 뺏기고 3,4세트를 6/3, 7/5로 얻었지만 마지막 5세트에서 3/6으로 내준 경기가 있었습니다.

    윔블던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승전이 두 번 있었는데, 1990년 결승전에서 독일의 보리스 베커가 스웨덴의 스테판 에드베리에게 1,2세트를 모두 2/6으로 내주고 3,4세트를 모두 6/3으로 가져왔으나 5세트를 4/6으로 내주는 바람에 대역전에 실패한 사례가 있었고,

    역사에 길이 남을 008년 윔블던 시상식장에서 페더러와 나달

     

    나머지 한경기는 너무도 유명하고 역사에 남는 결승전인 08년 윔블던 결승으로 페더러가 1,2세트를 모두 4/6으로 내주고 3,4세트를 모두 타이 브레이크 끝에 7/6으로 가져왔으나 5세트를 7/9로 내주면서 나달이 우승을 하고 페더러는 윔블던 6연패에 실패했습니다.

    따라서 4대 메이저대회 결승전 대역전승은 롤랑가로와 US오픈에서만 존재했는데, 롤랑가로에서는 무려 4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US오픈에서는 2020년 작년에 대역전승이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그 경기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1974년 롤랑가로 결승 <비외른 보리 2/6, 6/7, 6/0, 6/1, 6/1 마누엘 오란테스>

    롤랑가로 결승후 시상식에서 오란테스(좌)와 보리

     

    73년 우승자인 디펜딩 챔프 루마니아의 일리 나스타세가 8강전에서 미국의 헤롤드 솔로몬에게 패했고, 18세 소년 비외른 보리는 4강전에서 바로 그 헤롤드 솔로몬을 꺽고 그 당시로는 최연소 나이로 롤랑가로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그리고 상대편은 72년 롤랑가로 4강에 올랐던 마누엘 오란테스였습니다.

    오란테스는 72년 안드레스 히메노에 이어 스페인 선수로써는 오픈시대 두번째 롤랑가로 패권에 도전했습니다. 1세트는 오란테스가 6/2로 손쉽게 따냈습니다. 그러나 2세트부터 몸이 풀린 보리에게 오란테스는 조금씩 고전했습니다. 그래도 타이브레이크끝에 오란테스는 2세트도 가져갑니다.

    문제는 3세트부터였는데, 보리는 게임을 하면서 오란테스의 약점이 발리라고 생각했는지 일부러 짧은 볼을 주고 그 볼을 치고 들어오는 오란테스를 향해 무수히 많은 패싱샷을 날립니다. 그 결과 보리는 오란테스에게 내리 6게임을 따내면서 3세트를 6:0으로 가져갑니다.

    그같은 패턴은 4세트에서도 이어지고 4:0까지 간 상황에서 오란테스가 5번째 게임을 가까스로 따내 4:1을 만듭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 보리의 일방적인 페이스였고, 보리는 4세트와 5세트를 모두 6:1로 마무리지으며 롤랑가로를 정복한 첫 10대 선수가 됩니다.

    2. 1984년 롤랑가로 결승 <이반 랜들 3/6, 2/6, 6/4, 7/5, 7/5 존 매켄로>

    랜들은 3년전인 1981년 롤랑가로 결승전에 처음 진출했지만 비외른 보리에게 풀세트 접전끝에 2:3으로 패했습니다. 81년 대회는 보리가 6번째 롤랑가로를 품에 안은 대회이자 보리의 마지막 메이저대회 우승이었습니다.

    당시 체코 국적의 이반 랜들

     

    아쉽게 패한 랜들은 1984년 결승을 통해서 1971년 얀 코데스이후 두번째로 롤랑가로를 품에 안는 체코선수가 되고자 했을겁니다.

    문제는 결승전 상대가 1984년 무패의 기록을 쓰며 연승행진을 벌이고 있었던 세계랭킹 1위 존 매켄로였습니다. 클레이 코트였음에도 매켄로는 서브앤발리 플레이를 선보이며 16강전 스페인의 호세 이구아레스에게 한세트를 내준걸 제외하면 무실세트로 결승까지 진출했습니다.

    84년 무적의 위용을 자랑한 세계랭킹 1위 미국의 존 매켄로

     

    결승전 1,2 세트는 완벽한 매켄로의 플레이였습니다. 특히 상대의 서브게임을 무력화시키는 세컨서브리턴후 발리플레이로 랜들의 스트로크를 무력화 시켰고, 랜들은 1,2세트에서 매켄로의 강서브로 인해 리턴에 애를 먹었습니다.

    그렇게 1세트 6/3 그리고 2세트를 6/2로 접수했을때만해도 매켄로가 1955년 토니 트레버트이후 미국 선수로는 29년만에 롤랑가로 챔피언이 될거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3세트부터 조금씩 경기양상이 바꼈는데, 매켄로가 랜들에게 약점을 보인게 아니라 매켄로의 플레이는 여전히 좋았지만, 랜들이 더 이를 악물고 플레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매켄로의 서브에 점점 적응이 되더니 그때부터 리턴에이스도 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랜들의 입장으로썬 81년 롤랑가로 결승, 83년 호주오픈 결승에서 모두 패했기에 3번째 도전인 이번만큼은 내줄 수 없다는 독기를 품은건지 경기가 진행될 수록 더 빠르고 더 악착같이 뛰고 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3세트들어 처음 매켄로의 서브를 브레이크해서 6/4로 3세트를 얻었습니다. 이어 벌어진 4세트도 치열하게 전개됐는데 매켄로와 랜들은 서로 브레이크도 하고, 한편으론 브레이크도 당하는 공방을 치루다가 5/6에서 12번째 게임인 매켄로의 서브게임을 랜들이 브레이크하면서 랜들이 4세트마저도 7/5로 가져갑니다.

    이제 경기는 정말 두 선수 다 물러설 수 없는 5세트로 넘어왔는데 매켄로의 발리 플레이와 랜들의 패싱샷은 여전히 빛났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진건 매켄로였습니다.

    84년 롤랑가로에서 메이저대회 첫 우승을 경험한 이반 랜들

     

    1,2세트와 달리 리턴앤발리 플레이가 전혀 먹히지않고 랠리를 하다 대시를 해도 패싱샷을 계속 허용당하다보니 랜들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할 여지는 안보였습니다.

    그렇게 게임이 흘러 4세트와 동일하게 5/6 매켄로의 서브게임에서 듀스를 거듭하다가 결국 매켄로의 발리가 아웃이 되면서 4시간이 넘는 혈투는 이반 랜들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3수끝에 랜들의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이었고, 매켄로로서는 시즌 첫 패배였습니다.

    3. 1999년 롤랑가로 결승 <안드레 애거시 1/6, 2/6, 6/4, 6/3, 6/4 안드레이 메드베데프>

    99년 롤랑가로를 예상하면서 안드레 애거시의 우승을 점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여전히 스페인 테니스가 롤랑가로에서 강세여서 98년 우승자인 카를로스 모야, 98년 준우승자 알렉스 코레차 아니면 97년 우승자인 구스타보 쿠에르텐 등이 우승후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야 제 맛이듯이 디펜딩 챔프 카를로스 모야가 16강에서 안드레 애거시에게 1:3으로 패하며 탈락했고, 준우승자 알렉스 코레차도 8강전에서 브라질의 페르난도 멜리게니에게 0:3으로 패했습니다. 그결과 98년 4강에 3명이나 진출했던 스페인 테니스는 99년에는 4강이전에 전멸했습니다.

    99년 롤랑가로에서 분투하는 애거시

     

    4강에서 애거시는 세르비아의 도미니크 허바티를 세트스코어 3:1로 눌렀고, 우크라이나의 안드레이 메드베데프는 브라질의 페르난도 멜리게니를 역시 3:1로 누르고 결승에 올랐습니다. 애거시는 91년 결승이후 8년만의 결승진출이었고, 메드베데프는 생애 처음 메이저대회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이 대회를 회고했던 애거시의 인터뷰에 의하면 처음 1,2세트는 너무 긴장해서 몸이 맘대로 안움직였다고합니다. 더군다나 애거시는 이미 90,91년 롤랑가로 결승에서 패배를 맛본지라 긴장감은 더 했다고하네요. 그렇게 1,2세트를 맥없이 1/6,2/6으로 뺏기고 3세트 시작할때쯤 비가 내렸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메드베데프

     

    비가 내려서 경기가 지연됐을때, 길버트 코치가 라커룸에서 져도 좋으니 편안하게 하라고 조언을 해줬다고합니다. 이후 경기가 재개되었을때 애거시의 몸놀림이 확연히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전성기였던 95년도에 보여줬던 특유의 빠른 스트로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롤랑가로 우승으로 커리어 골든 슬래머가 된 애거시

     

    그렇게 3세트와 4세트를 따내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애거시는 5세트에서도 메드베데프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며 5:4로 앞선 애거시의 서브게임에서 메드베데프의 백핸드가 강해서 애거시는 계속 포핸드쪽으로 서브를 넣었습니다. 그 작전은 적중했고, 결국 메드베데프의 연속된 서브리턴 실패로 애거시는 처음으로 롤랑가로를 품에 안았습니다.

    99년 롤랑가로 남녀우승자가 되어 부부의 인연까지 맺은 애거시와 그라프

    이 우승으로 인해 애거시는 92년 윔블던, 94년 US오픈, 95년 호주오픈, 96년 애틀란타 남자단식 금메달을 합쳐 남자 테니스 최초의 커리어 골든 슬래머가 됩니다. 거기에 우승자 축하연때 여자 단식 우승자인 슈테피 그라프와 눈이 맞아서 결국 그녀와 결혼까지 이르게 됩니다. 한마디로 99 롤랑가로 우승은 애거시에게 영광과 사랑을 모두 안겨다 주었습니다.

    4. 2004년 롤랑가로 결승 < 가스톤 가우디오 0/6, 3/6, 6/4, 6/1, 8/6 기예르모 코리어>

    메이저대회 역사상 최초의 아르헨티나 선수끼리의 결승전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 선수의 우승은 77년 기예르모 빌라스이후 처음이었습니다. 남미선수로는 01년 브라질의 구스타보 쿠에르텐이후 3년만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기예르모 코리어

     

    1,2세트는 너무나도 완벽한 코리어의 경기였습니다. 특히 결승전 1세트 6/0 베이글 스코어는 77년 빌라스와 고트프리드의 결승전 이후 처음 나온 스코어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2세트는 6/3으로 코리어가 따냈습니다. 여기까지만보면 정확히 77년 빌라스가 고트프리드를 6/0, 6/3, 6/0으로 일방적으로 이긴 경기의 데자뷰가 될 듯 했습니다.

    하지만 3세트부터 가우디오의 테니스가 달라졌습니다. 우선 끈질긴 랠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코리어의 범실이 조금씩 늘어갔습니다. 3세트 게임스코어 코리어의 서브게임 40-15에서 그것을 뒤집은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해서 3세트를 6/4로 따냈고, 이어진 4세트에서는 코리어의 몸상태에 이상이 온 것을 틈타 6/1로 쉽게 따냈습니다.

    결국 5세트로 넘어갔는데, 게임스코어 4-4에서 코리어는 가우디오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며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우승을 결정지어야할 자신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 당하며 게임듀스로 넘어갔습니다.

    5-5에서 가우디오의 서브게임을 다시 한번 브레이크한 코리어는 12번째 자신의 서브게임에서 드디어 매치포인트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두 번의 샷이 모두 사이드라인을 아슬아슬하게 빗나면서 매치포인트를 다시 놓치고 게임스코어 6-6으로 갔고, 여기서 가우디오는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키고 다시 한번 코리어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며 77년 빌라스에 이어 두번째 롤랑가로 주인공이 됩니다.

    04년 롤랑가로 시상식에서 좌로부터 코리어, 빌라스, 가우디오

    하지만 05년부터 라파엘 나달이 접수한 롤랑가로에서는 더이상 결승전 풀세트 경기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나달이 차지한 13번의 우승가운데 3-0 스코어 6번, 3-1스코어 7번 이었습니다. 나달이 우승을 놓친 09년, 15년, 16년에도 풀세트 접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작년 2020 US오픈에서 도미니크 팀이 알렉산더 즈베레프를 0:2에서 3:2로 뒤집은건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저보다는 여러분이 훨씬 더 잘아시고 기억하시는 경기인지라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94년 US오픈 결승에 진출한 독일의 미카엘 슈티히

    다만 작년 US오픈에 즈베레프가 결승에 오름으로써 독일 남자 선수로는 2003년 라이너 슈틀러가 호주오픈 결승에 오른 이후 17년만에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오르게된 것이죠. US오픈으로만 따지자면 94년 미카엘 슈티히이후 26년만에 결승에 오른 셈이구요.

    하지만 우승은 못했기에 96년 보리스 베커의 호주오픈 우승이 독일 남자 테니스 선수의 마지막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아직까지 남아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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