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 :: 신화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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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파엘로
    역사에 관하여 /인물 2019. 2. 13.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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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상스의 세 거장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라파엘로 산치오는 우르비노 공작의 궁정화가인 조반니 산티의 아들로 1483년 태어났습니다.

     

     

     

     

    라파엘로가 태어난 우르비노는 문화의 중심지였기에 그는 어려서부터 많은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유년 시절을 보내게됩니다.

     

     

     

    하지만 라파엘로는 11세에 뜻밖의 사고로 인해서 고아가 되고, 이후 당시 화가로 유명했던 두 사람인 페루지노와 핀투리키오에게 그림을 배우고, 건축 지식을 얻게 됩니다. 이 무렵 라파엘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를 완성합니다.

     

     

     

     

    제단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와 같은 라파엘로의 초기 작품들에서는 페루지노의 유려하고 우아한 양식이 엿보입니다.  이미 페루자에서 스승인 페루지노보다 더 유명해진 라파엘로는 1504년 자신의 미술세계에 대한 경계를 넓히기 위해서 피렌체로 갑니다.

     

     

     

     

    여기서 존경의 대상이었던 레오나르드 다빈치와 알게되고, 미켈란젤로의 초기 작품도 접하게 됩니다. 이 무렵 라파엘로는 <카니지아니의 성가족>을 그리게됩니다.

     

     

     

     

     

     

    라파엘로는 피렌체에서 4년간 머물면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는 인체 해부학에 대한 지식을 배웠고, 레오나르드 다빈치로부터는 간결한 피라미드 구조와 효과적인 빛의 사용 친밀감 부드러운 색조변화로 형태에 입체감을 주는 스푸마토 기법 등을 익히게 됩니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으로 바티칸 궁에 간 라파엘로는 이후 교황청의 화가로 눈부신 활동을 시작하게됩니다. 그는 곧 사방에서 명성을 누리고, 나머지 생을 로마에서 보내게되는데, 그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준 작품중에는 교황청의 방 등에 그린 프레스코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아테네 학당>입니다. 여기서 라파엘로는 이야기와 구성을 최상으로 전개해나가는 그의 천재적인 감각을 보여주게됩니다.

     

     

     

    1514년 교황청 건축의 총감독이었던 브라만테의 죽음으로 라파엘로는 산 피에트로 성당의 작업지휘를 맡게 되면서 성당 건축의 방향을 수정하게 됩니다.

     

     

     

                    성모 마리아의 결혼

     

     

     

    이무렵 그는 또한 교황으로부터 고대 로마유적의 관리를 일임받아 1515년이후에는 발굴사업의 수장으로 일하기도 합니다. 1517년 라파엘로는 커다란 목판에서 예수의 현성용을 그리다가 완성하지 못한채 1520년 갑작스런 고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세간의 평에 따르면 라파엘로는 많은 여인들을 사랑했다고 전합니다. 그중에서도 바사리에 따르면 연애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열병을 초래했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그는 연애에 몰두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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