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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자화상의 화가 - 빈센트 반 고흐

by 시사맨 2019.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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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겨울 젊은 네덜란드 화가가 파리를 떠나 강한 햇살과 색채를 찾아 남프랑스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기 직전까지 수년 간 머리가 벗겨질 정도로 그림에 몰두하면서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우게 되는데, 그가 바로 열정과 자화상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자화상>

 

지금은 경매가에서 늘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는 유명한 화가이지만, 반 고흐는 스스로 선택한 고독 속에서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쓰는 일과 몇몇 지인들을 만나는 일을 제외하고는 팽생 타인과 인연을 끊고 살았습니다.

 

 

반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신앙심이 매우 돈독해서 영국과 벨기에의 광산촌에서 한때 전도사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성격상의 문제로 인해서 전도사를 그만두고, 이후 밀레의 예술세계에 감명을 받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던중 화상의 상점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동생 테오가 그를 인상파 화가들에게 소개시켜줍니다. 테오는 넉넉하지 않으면서도 반고흐에게 경제적 도움을 줍니다. 테오의 생을 보면 오로지 형을 위해 태어난듯 했습니다. 그래서 고흐가 죽을 때까지 이 갸륵한 마음씨를 지닌 동생의 도움으로 반 고흐는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습니다.

 

 

            <아를의 침실>

 

 

동생에게 반 고흐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소신과 심정을 털어놓습니다. 마치 일기처럼 쓴 이 편지는 지금은 반 고흐의 삶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가장 소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반 고흐의 그림은 붓질과 더불어 무엇보다 강렬한 색채의 효과가 두드러집니다. 반 고흐 특유의 색채는 인상파의 영향과 또한 서양의 전통적 미술과 크게 다른 동양의 미술의 영향을 받아 성립하게 된 것입니다.

 

 

   <빗 속의 다리>

 

반 고흐는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일본 열풍 "자포니즘"의 기수로서 일본 화풍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일본의 다색 목판화인 우키요에에 나타난 평면성과 자유로운 색채, 그리고  간략하면서도 대담한 디자인에 영향을 받아 초창기의 어두운 색채의 그림에서 벗어났습니다.

 

 

반 고흐는 주로 카츠시카 호쿠사이, 케이사이 에이센, 안도 히로시게의 목판화에 심취했습니다. 반고흐는 그 중에서도 안도 히로시게의 <에도 명소>를 좋아하여 히로시게의 여러 그림을 거의 그대로 베끼기도 했습니다.

 

 

 

강렬하면서도 화려한 색채의 구사 특히 그가 즐겨쓴 독특한 에메랄드그린은 안도 히로시게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

 

 

이처럼 헌신적인 열정과 자신들의 전통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타자와의 만남이 반고흐의 독특한 회화를 성립하게 한 것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그것을 생생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그림은 인간의 깊은 심연을 표출하는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그는 고갱과 헤어져서 귀를 자른 사건이 있은후 주변의 몰이해와 박대속에 약 1년간 상레미 병원에서 요양을 하다가 1890년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 스와즈로 장소를 옮겨 의사 가세에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밀밭을 나는 까마귀>

 

 

여기서 반 고흐는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였고, 이 시기에 <오베르 교회> <가세의 초상> <밀밭을 나는 까마귀> 등을 그립니다.

 

 

 

이렇게 불행한 삶을 살면서도 반 고흐는 생의 마지막까지 불꽃을 태우듯 그림을 그립니다. 하지만 결국 1890년 7월 그의 마지막 작품인 <밀밭을 나는 까마귀>를 완성한지 3일후 언덕에서 권총자살을 시도한후  동생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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